tag: 부스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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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4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는 두통에 하루종일 이마를 짚고 있었다. 그저께부터 유난스러운 바람이 불어댄 탓에 앞마당은 엉망이 되었다. 입술이 마를 정도로 건조한 방에 앉아 바깥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니 기분도 점점 마른다. 모든 일이 다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그런 막연한 바람에서 맴돌기만 할 뿐. 그냥 그런 날도 있지, 생각하고 넘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유독 스스로에게 모질게 대하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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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31일

1월 마지막 날이다. 학기가 끝나고 나서 허전함이 가득했다. 이 학교에서 마지막이라 그러기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힘들었던 수업이 있던 탓이다. 그 여운이 이번 달까지도 달라 붙었는데 털어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농담처럼 새해는 설날을 기준으로 해야지 했는데 설날이 다 되고 나서야 기분이 좀 정돈된 느낌이다.

올해는 꾸준히 독서하기로 M과 약속하고 책 목록을 만들었다. 1월에 끝낸 책은 아직 없지만 그래도 틈틈이 읽고 있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Wintering>을 읽었는데 챕터마다 좀 다르게 읽히긴 하지만 흥미있게 보고 있다. <Creative Selection>는 자기 전에 읽어서 약간 몽롱하게만 기억되는데 조금이라도 노트를 남겨야 할 것 같다.

텍사스에 일주일 다녀왔다. 위에서는 여행이라고 했지만 여행이라기보다는 가족 방문이고 가서도 장보는 것 외에는 어디 다녀오지도 않았다. 오미크론에 대한 걱정도 큰데다 주마다 사람들 대응이 너무 달라서. 장보러 갔을 때 본 안내문도 인상적이다. "masks recommended but not required"라고 꼭 꼬리 길게 써야만 하는 그런 곳이니까. 답답한 상황에 가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오랜만에 조카도 보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왔다.

COVID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올라간 기름값은 내려올 생각 없고 장보러 나가도 모든 가격이 다 오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동네에 또 차량 절도가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오는 불안감을 떨치기 쉽지 않다. 그냥 기분이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뒤로 넘겼던 일들인데. 이제는 집에서만 있으니까 그렇게 누르고 지나가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난 집에 있는 것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요즘 마주하는 모든 일에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좀 밉다. 그래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다 지쳐버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다독여서 정신 차리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편입 원서로 이제 다시 바빠질 예정이다. 지원하는 학교마다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도 프롬프트가 너무 달라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이 많다. 고민 중독의 삶 끝내고 싶은데 왜 계속 고민이 생기는 것인가. 메타 고민 이제 그만하고 2월은 다시 부지런히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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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9일

학기도 끝났겠다 트럼펫 연습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신기한 점은 매일 할수록 더 느리게 느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부족한 부분 집중해서 연습하지 않은 날은 엉성한 톤으로 재미있게 보낼 순 있지만 다음 날 똑같이 부족한 나를 마주하는 곤욕을 치룬다. 음 하나씩 최소한의 호흡으로 길게 소리를 내는 지루한 루틴으로 시간을 보내면 당장 그날에도 확연하게 여유롭고 부드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누가 옆에서 박자를 세주며 높거나 낮음을 지적해주지 않는 상황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유튜브를 선생님 삼아 스스로 녹음하고 듣는 과정으로 조금씩 다듬는다. 롱톤을 모든 스케일에 걸쳐 하는 일은 악기가 있다 뿐이지 운동에 가깝다.

필요한 일은 모두 고된 일이고 끝에 성취감은 있지만 시작이 늘 쉽지 않다. 쉬운 시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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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6일

무엇이든 꾸준하게 하는 습관이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삶에 도움이 된다는걸 계속 배우게 된다.

조각모음: 2021년 9월, 10월

2021년 11월 1일

seattle

우리가 갔을 때도 비가 왔다. 차가운 공기. 상상했던 그런 날씨.

이제 앞으로 더 바빠질 예정이라서 9월, 10월도 얼른 적는다.

  • 이번 학기에 생각보다 어려워서 괴로워하고 있다. 예전 학기는 어려워도 시간을 많이 쓰면 뭔가 해결이 되는 기분이었는데 이번 학기에는 유독 어렵게 느껴진다. 이 상황에서 좋은 점수 내는 애들 보고 있으면 내가 어디를 어떻게 놓치고 있는 것인지 싶기도 하고. 결국은 또 시간을 많이 써서 점수 만드는 방법 밖에는 없구나 생각도 들고. 그 사이에 아픈 날도 있었어서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한 것도 있는 것 같다. 건강하자.
  • 시애틀에 다녀왔다. 민경 씨가 2년 전에 만들어둔 스케줄이 있었는데 판데믹 탓에 지금까지 미뤄져서 이번 틈에 잠시 다녀왔다. 탄탄한 계획 덕분에 고민 없이 모든 일정이 즐거웠다.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고 커피도 많이 마셨다. 자연 속에 있는 도시라 녹음을 어디서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Pacific Northwest 라고 부르는 것도 귀여웠다. 여행에서는 비가 번거롭기만 한 날씨지만 나나 민경 씨나 비를 워낙 좋아하고 또 비가 전혀 오지 않는 도시에 살아서 일정 내에 온 비가 얼마나 반갑던지, 좋은 장소에 즐거운 기억 만들고 왔다. (한동안 그레이 아나토미를 본 탓에, 아 이 도시 어디엔가 그런 병원이 있을 것만 같네, 생각도 들었다.)
  • 임플란트를 하게 되었는데 탓에 한동안 트럼펫 연습도 못할 것 같다.
  • 어쩌다가 식물 유튜브를 보게 되어서 또 집에 있는 식물들 물꽂이하고 난리를 시작했다. 습도가 워낙 낮은 지역인데다 집안은 더 건조한 편이라 그냥 유튜브에서 알려주는 것만 따라해서는 부족한걸 배웠다. 어떻게 관찰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좀 제대로 화분에도 옮겨 심고 제대로 키우고 싶다.

이제 올해도 2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남은 2달이 더 바쁠 예정이라서 조금 걱정이다. 연말에는 제대로 한 해 되돌아보고 즐거웠다고 성장했다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각모음: 2021년 8월, 9월 조금

2021년 9월 12일

texas

어쩌다보니 8월 말에 글 제목만 적었는데.

  • 학기가 시작했다. 여기서 마지막 학기인데 원래는 18주였던 학기가 일부 과목 빼고 14주로 단축되었다. 다른 학기와 마찬가지로 걱정이 앞서지만 시간을 많이 써서 성과 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게 크게 없으니까. 무거운 엉덩이로 결과를 만들자.
  • 조건부 영주권에서 일반 영주권으로 전환되었다. RFE를 요청하는 바람에 놀라서 이것저것 급하게 서류를 모아 보냈다. 내가 어딘가 살아야 할 이유를 남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서류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이란 정말 피곤하고 힘이 빠지는 일이다. 앞으로 더이상 서류와의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행복하다.
  • 텍사스에 다녀왔다. 매우 짧은 방문이었지만 이번엔 그 틈에 UT Austin을 갔는데 학교도 생각보다 크고 시설도 좋아보였다. 일단 오스틴 자체가 매력이 넘치는 도시인데 과연 여기서 학교를 다니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캠퍼스를 걸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또 다른 도전에 대한 설렘보다는 이사 걱정이나 재정에 대한 고민에 너무 막연한 목표인가 싶어지기도 했고. 일단 하자, 해보자 하는 태도로 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트럼펫은 계속 연습하고 있다. 시간을 많이 쓰면 지치기만 하고 여기서도 긴장 낮추고 여유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노력하고 있다.
  • 여름학기 후에 푹 쉬었다. 지나고 나면 정말 얼마 안되는 나머지 여름이었지만 그냥 별 생각 안하고 티비보고 아무거나 하면서 지냈다. 크고 작은 일이 있긴 했지만 올해 남은 시간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좋은 결과 낼 수 있음 좋겠다.

성장은 끝이 없다는 것 매일 재확인한다. 결국 노력이 답이다. 가을 문턱이라고 시원한 날은 또 엄청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