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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호주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2016년 1월 28일

비너스 베이에서
비너스 베이에서. 이렇게 장대한 백사장은 처음!

2015년 12월 중순부터 2016년 1월 26일까지 한달 조금 넘는 시간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일이 있으셔서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했지만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멜번과 멜번 근교를 여행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휴가는 전체 기간 중 반절 정도 냈고 휴가가 아닌 기간엔 시내 구경을 하거나 버스투어로 근교 지역 여행을 다녀왔다.

  • 아이반호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 구경
  • 크리스마스 시내 구경, 시청 프로젝션 구경
  • 새해 불꽃놀이
  • IKEA
  •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 St Kilda 바닷가
  • 이안 포터 아트센터
  • NGV 상설전시, 특별전시(Ai Weiwei)
  • 보타닉 가든
  • Shrine of Remembrance
  • 빅토리아 마켓
  • 토키 에어비엔비
  • 질롱 시내 (양 박물관, 질롱 갤러리 / 도서관)
  • 웨레비 동물원
  • 호주 테니스 오픈 키즈데이
  • 마운틴 단데농
  • 비너스 베이
  • 모닝턴 페닌슐라
  • 필립아일랜드 투어(헤리티지 농장, 코알라센터, 남극체험 센터, 펭귄 퍼레이드)
  • 저스틴님댁 BBQ
  • 체드스톤

차를 렌트해서 돌아다닌 기간에는 주로 외각 지역을 다녀왔고 그 외에는 대중교통을 주로 사용했다. 집에서 인근 마켓까지 걸어서 다닐 정도 거리가 돼서 가족끼리 걸어 장보러도 자주 다녀왔다. 다녀 온 모든 곳이 좋았고 기억에 남는다.

공항에 마중 간 날부터 배웅하고 온 그 시간까지 함께 보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다. 아직까지 함께 지내던 기억이 더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편한 기분이 들었다. 배웅하고서 집에 돌아가는 길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구나, 회사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잡다한 고민이 많이 들었지만 집 문에 들어서는 순간, 동생이 말했던 것처럼 참 허전했다.

해외서 지내며 가장 어려운 일은 관계다. 물론 여기서도 새로운 관계를 알아가고 친해지고 같이 밥도 먹긴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가 힘들 때 기껏해야 문자 몇 자로 위로 해주는 정도고 가족은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지낸다”고만 얘기한다. 이런 시간은 빚이 되고 어떤 의미로든 갚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부담감이 호주에서의 삶을 더 집중하고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한달 푹 쉬고 지냈고 올해 계획도 아직 정리하지 못했는데 벌써 해야 할 일도 여럿 생겼다. 남은 1월은 차분하게 계획을 세워 올해를 제대로 시작해야겠다.

2015년 다시보기

올해 나란 사람은 어떻게 살았나

2015년 12월 30일

Ai Weiwei
호주 생활에서, 아니 내 인생 통틀어 미용실서 자른 머리 중에 워스트 1위에 빛나는 스타일.

2015년 목표를 다시 읽어보며 내년엔 무슨 계획으로 지낼까 고민하다가 먼저 올해는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2015년에도 자잘하게 많은 일이 있었다. 신상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혼자 나와서 살기 시작한 점이다. 혼자 살아본 경험이 전무해서 한동안은 정말 긴장 잔뜩한 상태로 지냈지만 이제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출퇴근에 시간을 많이 썼었는데 개인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어서 한동안 이사 관련해 꽤 고생했지만 만족스러운 결정이었다. (호주 기준으로는 평범한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회사에서는 계속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계속 PHP로 개발하고 있고, 올해는 Magento로 개발하는 일이 많았다. 회사에서 진행한 몇 자체 프로젝트는 PSR에 따라 개발도 했고 그에 따른 사내 교육도 진행했다. 연초엔 그래도 한산했는데 7월 즈음 유지보수로 들어온 클라이언트로 인해 야근에, 주말에 일하는가 하면, 단기간에 해결 안되는 수많은 이슈로 일감 관리가 전혀 안됐던 탓에 일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시끄럽고 방해가 많은 사무실 환경까지 더하니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흥미가 떨어지는 일에 강한 압박 받으면서 퇴근할 때 오늘 한 일이 한 단어로 정리가 안되는 날이 몇 달 반복 되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 기간동안 정말 좋은 오퍼도 많이 받았는데 비자 탓에 고사할 수 밖에 없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나마 지금은 진정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여전히 기억하기 싫다. 그 기간 경험에서 내년엔 내 커리어를 어떻게 갖고 가야하나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지난 해를 대비해서 생각하면 한 달 이상 시간을 쓰는 일에는 그닥 열심히 노력하지 못했던 것 같다. 꾸준하기보다 회사 일이 지친다는 이유로 그때그때 흥미있는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자잘하게 공부하고 했던 일은 많은데 그렇다고 배운 것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이 없었던 점이 가장 후회된다. 연중에 코세라와 eDx에 참여했는데 결국 초반 몇 강의만 듣고 더이상 진도를 내지 못했던 것도 아쉽다. 올해 가장 관심 많았던 부분은 함수형 프로그래밍이었다.(@devthewild님의 영향이 크다.) 아직도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내년에도 관련된 공부를 더 하고 싶다.

영어는 엄청 나아졌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최근 IELTS를 본 결과로는 정말 근소하게 나아졌다. 그나마 시험 준비하는 기간에 공부를 조금 한게 전부였는데 좀 더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게 아쉽다. 그래도 올해는 클라이언트랑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일이 엄청 늘었는데 전화로 말하고 메일 쓰는 일이 엄청 늘어서 영어 실력은 늘지 않았어도 자신감은 조금 늘어난 것 같다. (물론 클라이언트랑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는건 그닥 좋은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했던 일은 짧게라도 읽은 글이나 살펴본 내용은 블로그에 기록했다는 점이다. 직접 쓴 글보다 번역글이 더 많았지만 올해 총 76개 포스트를 남겼다. 연초 목표에 적어두진 않았어도 100개 정도를 목표로 잡았는데 한동안 미드 본다고, 그리고 이사 간다고 글을 뜸하게 썼던 기간이 있어서 달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올해는 한참 전에 썼던 글이 갑자기 공유되어 평소같지 않았던 조회수도 경험해봤다. 연초 한국에서 작성한 IT 개발자, 호주에서 일하기를 비롯해서 라즈베리 파이 2를 구입한 이야기와 같은 글도 많이 읽히고 있고, 커밋 메시지에 관한 글어떻게 학술 논문을 읽어야 하는가 같은 번역글도 많이 공유되었고, 다양한 의견을 살펴볼 수 있던 기억이 난다. 내년에는 번역도 꾸준히 하지만 내 글도 더 많이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한모임 활동도 계속 참여했다. 시즌2를 조직하면서 커뮤니티를 위한 개발을 몇가지 할 예정이었지만 내 역할을 제대로 못해 특히 아쉽다. 그리고 올해에는 크고 작은 행사를 매번 꾸리는데 고생하는 분들께 미안한 감정이 늘 가득했다. 작년과 비교하면 그저 슬랙에서 웃고 떠드는 일, 리트윗 하는 일 외에는 없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실질적인 커뮤니티를 꾸리는데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심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그닥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내 욕심이 지나치게 많아서 그런 것인지 어쩐지 몰라도 내가 어떤 역할로 이 커뮤니티에 계속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6월부터 제이펍 베타리더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올해 중반부터 한국어로 된 책을 부지런히 읽고 있고 지금까지 6권 참여했다. 어려워서 제대로 읽지 못한 책도 있었지만, 책을 읽고 오탈자를 찾고 어색한 내용에 메모하는 과정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베타리더로서 남긴 후기가 책에 함께 들어간다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읽을 책이 많이 기대된다.

올해도 건강관리를 그닥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이사한 이후로 아침, 점심, 저녁 음식을 직접 챙겨 먹다보니 식사량을 조절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살을 많이 뺄 수 있었다. 직접적인 운동은 많이 하지 못했고, 자전거 출퇴근은 아직도 미루고 있다. 내년엔 둘 중 하나는 습관으로 만들어서 운동량을 늘려야겠다.


2015년에는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완전 절망스러운 결과는 아니구나 생각이 든다. 내년엔 조금 더 세세한 계획을 갖고 더 부지런히 도전하며 지내야겠다.

2015년 번역 회고

올해 번역하고 느낀 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다는 생각으로.

2015년 12월 23일

조은님과 강성진님의 포스트를 읽고 번역에 관한 회고를 간략하게나마 남긴다. 전문적으로 하는 번역은 아니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인 일 중 하나였고, 그 결과로 올해 작성한 블로그 포스트 대부분이 번역글로 채워졌다. 원문의 길이도 다양했고 그 분야도 다양한 편이였는데 읽고 나서 유익하다 싶었던 글은 대부분 번역했던 것 같다.

올해 번역을 유독 많이 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올해 초에 썼던 목표대로 경험을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짧게라도 읽는 글을 정리한다는 느낌을 갖고 시작했다. 모국어로 사유를 확장할 수 있는 컨텐츠가 적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한국어 구사자는, 특히 개발자라면 최신 정보를 알기 위해 사소한 글이라도 영어를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자연스레 놓이게 된다. 그래서 내가 사소하게 읽는 글이라도 간단하게 국문으로 옮겨두면 나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 글이 필요한 다른 사람도 도움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호주에서 지내며 영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그리고 한국어로 긴 글을 별로 쓸 일이 없어 문장이 많이 서툴어지고 있던 점도 있어서 겸사겸사 번역에 시간을 쓰게 되었다. 영어도, 한국어도 잘 못하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했다.

몇 번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짧은 글이였다. 처음엔 짧은 글도 번역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비슷한 표현도 많이 나오고, 내용도 쉬운 글을 위주로 번역했기 때문에 점점 번역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짧은 글은 지치지 않고 끝낼 수 있어 자연스럽게 성취감과 자신감도 따라왔다. 공유에 따라 피드백도 바로바로 받을 수 있어서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동력이 되었다.

명세와 같이 중요한 문서나 깊은 통찰이 있는 글을 번역하는 일은 분명 멋진 작업이지만 별로 많이 하지 못했다. 아직 분량이 많아지면 겁이 나기도 하고 “공식적인” 느낌의 글을 옮기는 것은 묘하게 부담이 느껴진다. 그래도 짧은 글에서 점점 긴 글로,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는 글을 번역해 점점 근육을 키워가는 것을 목표로 했고, 예전에 비해 글을 번역해야지 하는데 고민이 많이 줄었다는 점 등 그 목표를 잘 따른 한 해라고 생각한다.

좋은 번역이었나에 대해서는 답을 하기 어렵다. 시간을 들여 좋은 품질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그냥 글을 읽는 것처럼 번역해 그 시간을 줄이는 것을 더 고려했었다. 또한 직역보다는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의역을 많이 했다. 용어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지나친 초월 번역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트위터나 슬랙을 통해서 물어봤고, 또 그런 과정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내년엔 필요할 때만 물어서 용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용어집을 만들어 정리하고 번역 원칙에 따르는 것도 꼭 해봐야겠다. 또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영어나 한국어나 실력이 평범한 수준이라 아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내년에는 번역의 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시간도 충분히 투자하고, 또한 영어, 한국어 수준이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가장 철저하게 따른 원칙은 저작권 준수다. 저작권이 명시되어 있다면 저작권에 따라 병기했고 따로 명시되지 않았다면 꼭 저자에게 메일로 문의해 명확한 허락을 받고 번역, 게시했다. 단 한 번도 이 원칙을 따르지 않은 경우가 없었는데 단 한 명도 안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고맙다는 피드백도 받을 수 있었다. 메일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도 저자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콜드 메일을 보내는데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맨 처음 번역글을 작성할 때 찾았던 초보 번역자들에게 보내는 몇 가지 조언은 매번 번역에 어려움이 있거나 지침이 필요할 때, 거친 얘기를 들어서(번역이 왜 이렇게 구리냐, 이런 유치한 것도 번역하냐 등등) 마음이 힘들 때마다 꺼내 읽는 글이다. 특히 비웃는 자를 비웃어 주라는 이야기가 특히 힘이 되었다. 😀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새해 목표 목록에 번역하기를 추가한다면 참 기분 좋을 것 같다.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마주하고 번역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읽을 거리

꾸준하게 블로그하기

2015년 11월 28일

어린 시절 일기를 꾸준히 써야 한다고 주입받은 사람이라면 어딘가에 삶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긴다. (실제로 기록하고 있지 않더라도.) 난 공부는 못하더라도 선생님 말씀은 엄청나게 잘 듣는 타입의 학생이었기 때문에 기록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일기도 매번 작심삼일이지만 꾸준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컴퓨터를 배우고서는 컴퓨터에도 일기를 썼었다. 그땐 그 글이 평생 가리라 생각하고 1GB 하드 드라이브, 3.5인치 플로피 디스켓에 저장했었다. 당연히 그때 쓴 글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글이 되었다. 그 하드는 죽어서 2GB로 교체했고 플로피 디스켓은 더는 읽을 수 없었다.

인터넷을 맨 처음 만났을 땐 인터넷에 글을 쓴다면 더 오랫동안 글을 갖고 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리고 이름도 기억 안 나게 망해버린 서비스에 글을 썼다.1 그렇게 글을 날려 가면서도 이곳저곳 글을 많이 작성했다. 서비스를 이용해서 글을 작성하면 기술적인 문제로 날려버리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서비스가 망하지 않는 이상 평생토록 저장할 수 있다. 물론 당시 많은 서비스가 접혀서 여러 번 날렸다.

2000년 홈페이지 방명록 사진
과거에도 관리 안한다고 욕먹었던 나란 사람

여러번 서비스를 옮겨가면서 글을 썼지만, 문제는 나 자신에게도 있었다. 너무 유치하고 어린 이야기만 가득하다고 느껴 지워버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대부분 서비스는 몇 번 클릭으로 계정을 지우거나 글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되돌릴 방법 없이 쿨하게 모든 데이터를 지워버릴 수 있던 탓에 내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지냈는지 들춰 볼 일기장이 없어지고 말았다.

내 글을 누적하는데 내적/외적 문제가 늘 발생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폭파하지 않고 꾸준하게 사용한 곳은 바로 여기다. 아직도 과거의 글을 보면 오글거리고 유치해서 삭제 버튼에 손이 가는 편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글을 올려둔 호스팅과 도메인을 유지하는 데 돈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내 글에 좀 더 애정이 생겼다. 그렇게 이 블로그가 가장 오랫동안 꾸준하게 글 쓰고 관리한 곳이 되었고 매일매일 그 꾸준함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왜 쓰고 왜 공유하나

꾸준하게 쓰는 것이 앞서 말한 강박감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면 무엇을 쓰고 공유할지에 대해서는 호주에 올 준비를 할 때 든 생각 때문이다.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 오기 전에 책도 여러 권 읽어보고 후기도 매일같이 찾아서 읽어봤지만, 다들 농장에서, 공장에서, 또는 리조트나 호텔에서 일한 이야기만 있었지 호주 취업시장이 어떻고 어디서 무엇을 알아봐야 하는지에 대한 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글로 검색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느 계절에 어느 지역 농장에서 체리를 따면 주천 불을 벌 수 있다더라, 성과제로 운영되는 농장에는 농사의 신이 존재해서 하루에 삼사백 불을 번다더라, 어느 리조트에 들어가는 건 까다롭지만 일 안 하는 날엔 리조트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더라. 이런 이야기 외에는 찾기 힘들었다.

어디든 “IT로 취업하려고 하는데….”하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현지인도 어려운데 가능하겠냐”는 부정적인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흔하지 않을 뿐 누군가는 그렇게 하고 있겠지 하고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워킹 홀리데이로 와서 어떻게든 도전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주로 출국하기 얼마 전에 활동하던 개발 커뮤니티에 이 이야기를 올렸는데 워킹 홀리데이로 시드니에서 웹 프로그래밍으로 일을 시작해 스폰서 비자로 전환했다는 분이 있었다. 몇 줄 안 되는 댓글이었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아니란 말에 걱정을 좀 덜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단순히 호주 이야기 외에도 내가 겪는 모든 일을 글로 남기면 누군가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바다에 편지 띄우는 심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쓰긴 시작했지만,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것보다 먼저 나 스스로 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어떤 글로 시작할까

요즘 쓰는 글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눠보면 하나는 정리해두고 잊기 위해 작성하고, 다른 하나는 경험이나 지식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작성하는 글이다.

정리해두고 잊기 위한 글은 두 세 문단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한 글로 큰 노력 없이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다.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짧은 글이기 때문에 용건만 간단히 작성하고 나중에 다시 쓸 일이 있을 때 1분 이내로 읽어서 바로 사용할 수 있으면 된다. 이런 글을 작성할 때는 읽고 나서 더 찾아보고 싶은 경우를 위해서 링크나 키워드를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주한 문제를 내가 표현하는 방식으로 정리해둔 글은 내가 다시 검색할 때 효용이 크다. 내 표현대로 작성했기 때문에 글을 작성하고 잊더라도 검색엔진에서 생각나는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소한 글은 색인 카드를 작성하는 느낌으로 쓸 수 있다. 이 과정을 겪게 된 이유, 이후엔 어떻게 되었는지 한 줄 덧붙이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이 된다.

다른 하나는 바둑에서 대국을 끝내고 복기하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과정을 정리하는 글을 작성한다. 경험에 대해 작성한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활자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경험을 객관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객관화된 경험은 비슷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활용하기 좋으며 명료하게 정리한 과정에서 내공으로 쌓이게 된다. 알게 된 지식에 대해 자신만의 표현으로 논리정연하게 정리하면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 이런 글을 작성하기 전에는 어떤 내용을 쓸지 짧게 정리한 후에 시작하면 도움된다. 다 작성하고 나서는 퇴고를 꼼꼼하게 한다. 이런 글에 시간을 얼마나 쓰는가는 이 글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에 따라 좌우한다.

이 두 가지 글쓰기는 그 경계가 모호한 편이다. 사람들이 읽고 좋다고 많이 공유하는 글은 복기하는 식의 글이지만, 사소한 글을 평소에 많이 쓰지 않으면 긴 호흡의 글을 작성하기 쉽지 않다. 나도 긴 글을 작성하는 데 늘 어려움이 있어서 사소한 글을 많이 쓰는 편이지만 점점 호흡이 늘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호흡은 둘째 치고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작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꾸준해지고 싶다면 작게 시작해야 한다.

꾸준함 그 이후는

꾸준함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하면 의도적인 수련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시간을 더 짧게 잡고 작성한다거나, 더 넓은 외연과 깊은 식견의 글을 작성한다거나, 연재 형식으로 글을 작성한다거나 말이다. 스스로 좋은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는 목표를 찾는 것이 좋은데 물론 그 전에 꾸준함을 먼저 챙기는 것이 좋겠다. 평소에 달리지도 않았던 사람이 내일 당장 마라톤을 뛰겠다고 결정하는 것만큼 황당한 일이다.

꾸준함을 유지하면서 내가 지키려는 원칙도 있는데 그 원칙 중 0순위는 작성한 글을 삭제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엄청나게 공유된 오픈소스 쓰셨던데 그러고도 개발자입니까?도 내 블로그에서 조회 수에서 큰 지분을 가진 글인데 공유될 때마다 다시 읽어보면 그때 그 분노를 추스르지 못했던 내 상황이 자꾸 생각이 나서 삭제할까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글 중 하나다. 그래도 다 내 경험이고 그때 일했던 시기를 다시 기억할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통로다. 만약 과거에 이 글을 삭제를 했다면 이때 경험을 영영 상기할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참조가 없으므로 GC로 정리되서 말이다.

잘 쓰기보다 꾸준함이 먼저

멋진 통찰이 가득한 블로그를 보면 이 블로그를 쓰는 사람은 참 대단하다 생각하며 RSS에 구독하고 있고 나도 언젠가 그런 블로그처럼 멋진 글을 올려야지 생각한다. 누구를 닮아야지 하고 롤모델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종종 내 부족함에 대해서만 고민하게 되고 그 사람처럼 멋진 글을 못 쓰니까 글을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꾸준함이 습관이 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나를 중심으로 글을 써야 한다. 내가 공유하고 싶은 글, 내 생각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글을 써야 한다. 그러면 꾸준함의 궤도에 오르기 쉽고 그 이후로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항해할 수 있다. 꾸준하게 하지도 않는데 잘하길 먼저 고민하면 그건 너무 욕심이 아닐까 싶다.

아직 나도 많이 부족하고 재미없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올리지만 오랜만에 내 블로그를 둘러보면서 든 생각을 두서 없이 정리해봤다. 자신 있게 블로그를 자랑할 수준은 안 되지만 예년보다 꾸준히 한 편이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점이 많았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 그 서비스 중에 생각난 이름이 있어서 검색해봤는데, 세상에, 아직도 서비스하고 있었다. 12년 전에 쓴 추리소설이 아직도 존재한다. 세상에. 
  •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모카팟 Moka Pot 사용기

    2015년 11월 15일

    저스틴님 댁에 살 때는 엄청나게 큼지막한 커피 머신이 있어서 커피 생각이 나면 내려서 먹을 수 있었지만 이사 온 이후로는 커피를 집에서 마실 일이 없었다. 그 핑계에 카페인 섭취량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매일 회사서 사 마시다 보니 차라리 집에 장비를 꾸려두고 적당히 조절하는 게 어떨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래서 두 달 전 프렌치프레스(French press)를 구입했다. 뒷정리가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마시고 정신 차리는 게 하루를 밀도 있게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란 사실을 알고서 계속 마시고 있다. 카페인 걱정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프렌치프레스를 구입하기 전에도 모카팟(Moka Pot)을 구입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프렌치 프레스로 구입했었다. 근데 여자친구가 2주년 선물로 모카팟을 선물해줘서 결국 둘 다 갖게 되었다. (선물 고마워요! ?)

    프렌치프레스는 필터 안 갈아도 되는 드립 커피 느낌이지만 모카팟은 일단 에스프레소 추출기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압력밥솥과 같은 원리로 추출하는데 시각적으로도 신기하고 독특하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면 모카팟 하나 장만해 커피 내려 마시는(원리로는 올려 마시는?) 재미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모카팟은 원래 Bialetti에서 모카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제품이 원조인데 이 제품의 원리를 사용한 모든 제품군을 모카팟으로 부르는 것 같다. 내가 선물 받은 팟도 이 원조 제품인데 1933년에 출시했더라. 역시 좋은 제품은 오랫동안 간다.

    The maling room coffee

    먼저 커피콩을 준비해서 블랜더에 갈아준다. 동네 카페에서 구입한 콩인데 처음엔 너무 시큼하단 생각을 했는데 먹다보니 적응 되었다.

    커피를 블렌더에 갈아준다

    블렌더에 갈리는 커피콩

    적당한 양을 넣고 갈아준다. 너무 살짝 거칠게 갈아야 한다고 모카팟 설명서에 써져 있어서 적당히 간다. 너무 곱게 갈면 압력이 너무 강해져 위험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모카팟 해부

    모카팟은 곤충처럼 세 부분으로 나뉜다. 밑에 물을 넣으면 깔대기를 통과해 윗 공간에 커피가 모이는 방식이다. 단순하면서도 만듬새 있어서 평생 쓸 수 있을 것 같다.

    물을 콸콸 넣어준다

    하단 공간에 물을 먼저 넣어준다. 물을 넣을 때 안에 압력을 조절하는 구멍 같은게 있는데 그 구멍을 막지 않는 선까지 물을 넣어준다. 압력밥솥에서 일정 압력을 유지해주기 위해 달려있는 뚜껑 꼬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깔대기를 하단부에 장착

    커피를 넣어준다

    깔대기를 놓고 앞서 갈았던 커피를 적당하게 넣어준다. 내 모카팟은 6컵을 한 번에 만들 수 있는데 4컵 정도 만들 분량만 넣는다. 한 잔 따라서 마시고 나머지는 보틀에 넣어 사무실에 갖고 가서 물타서 마시고 있다. 이렇게 커피 덕질을 시작하는 느낌.

    조립

    커피를 다 넣었으면 나머지를 잘 조립해준다. 꽉 닫아야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상단부가 날아갈 일 없고 압력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가스렌지에 올린다

    가스렌지에 올리고 불을 켠다. 중불로 하라고 하는데 약한 쪽에 올려서 최대로 트는게 더 간편해서 그러고 있다.

    커피가 나오는 모습

    적당한 때가 되면 치치 소리가 나면서 커피가 나온다고 한다. 나는 소리가 안나서 (아니면 그렇게 귀가 민감하지 않아서) 그냥 보고 있다가 한 60% 정도 커피가 올라오면 불을 끈다. 압력이 강하기 때문에 열어보다가 커피가 뿜어져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따라 마시기

    불을 끄고 따라서 마시면 된다.

    커피 완성

    같은 콩이라도 프렌치프레스에 내려서 마시는 것과 에스프레소로 마시는 것은 생각보다 맛이 많이 달랐다. 믹스 타서 마시는 것에 비하면 과정도 길고 복잡한 기분이 들지만 이렇게 직접 해보니 또 새롭다. 일상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점을 찾는다는 점은 즐거운 일이다. 오랜만에 직접 글을 써서 그런지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하나 막막하다. 여러분 커피 많이 드세요. 헤헤.

    호주에서의 세번째 이사

    2015년 8월 15일

    1년 반 만에 세번째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간 Justin님 댁에서 감사하게도 정말 편하게 하숙 생활을 하며 걱정없이 지낼 수 있었다. 몸이 편하면 게을러지는 타입인 나란 사람은 좀 더 부지런히 지내기 위해 주변 환경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직접 집을 빌리고 사용할 가구도 구입하는 등 이사 자체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기도 했고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서 기대만큼 걱정도 컸다. 이제 이사온 지 거의 한달이 되었는데 얼마 전 인터넷까지 설치가 완료되서 지금까지의 과정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이사갈 집 찾기

    이사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부동산 메타 사이트(realestate.com.au, domain.com.au, etc.)에서 집 검색
    2. 인스펙션 약속을 잡아 집을 살펴봄
    3. 마음에 들면 어플리케이션 제출, 안들면 1번으로
    4. 합격(?)하면 부동산에서 연락이 와서 보증비 bond를 먼저 입금
    5. 짐 꾸리기
    6. 이사가기 전에 렌트비 입금
    7. 이사 당일 열쇠를 수령한 후 이사

    메타사이트를 보면 베드룸 몇, 주차 몇, 화장실 몇으로 표시되고, 부동산에서 작성한 설명과 사진을 볼 수 있다. 사이트를 보다보면 쇼핑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화려한 사진도 많고 거창한 설명도 많은데 막상 가보면 실제와 다른 경우도 있었다. 한군데만 보고 결정할 수 없으니 결정을 쉽게 하기 위해 어떤 집을 고를까 목록을 먼저 만들었다.

    • 출퇴근 30분 내외 거리, 트램 정거장 가까운 곳, 기차역 있으면 +a
    • 10분 내외 거리에 장 볼 수 있는 곳
    • 1 or 2 베드룸
    • 카펫보다는 마루바닥
    • 전기렌지는 비싸고 조리음식하기 불편하므로 가스렌지 있는 곳
    • 북쪽으로 창문이 있어 채광이 잘되고 습하지 않은 곳
    • 2층 이상이면 +a
    • 녹물 나오지 않는 곳, 물이 콸콸 나옴, 냉온수 잘나옴
    • 샤워부스 있고, 세탁기 설치할 수 있는 곳
    • 조금 비싸더라도 살면서 불평하지 않을 집으로

    위 목록 기준으로 메타 사이트를 검색했다. 일단 회사를 트램으로 통근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았다. 처음엔 72번 트램과 Glen waverly 트레인 라인이 교차하는 Glen Iris 인근에 알아보려고 했는데 주변 편의시설이 없어 장보려면 트램을 이용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게다가 그 동네에 나온 집도 별로 많지 않아서 괜찮아 보이는 곳은 두 군데 정도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을 짬 내 한 곳을 다녀왔는데 중개인이 시간을 안 지켜서 보지도 못하고 오고 그래서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는 동네였다.

    그렇게 트램 라인을 따라 검색하던 중 Armadale 인근에 집이 많이 나와 있어 가장 많은 집이 인스펙션 하는 날짜에 휴가를 내고 여섯 군데 집을 돌아봤다. 다행스럽게도 그중에서 위 조건에 가장 충실한 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신청서는 부동산 업체마다 양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종의 보증인을 적게 되어 있는데 각각 보증인에게 직접 전화해서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다. 전에 같이 살던 사람, 회사 상사, 동료, 친구 등을 적게 되어 있다. 그 외에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은행 명세서, 신원확인을 위한 신원 증명 관련 서류를 첨부하게 되어 있다. 특히 신원 확인의 경우, 점수제로 100점 이상 넘겨야 하는데 내 경우에는 여권, 우체국에서 발급해주는 Photo ID, 은행 서류로 점수를 넘길 수 있었다.

    신청서를 제출한 다음 날, 부동산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와서 서류가 통과되었다고 보증비를 입금하라는 연락이 왔다. 입금한 후 에이전시에 방문에 추가적인 설명을 듣고 서류에 서명해 모든 절차를 완료했다.

    그러고 집에 와서 짐을 꾸렸는데 어느 사이에 이렇게 짐이 많이 늘어났는지 한참 걸렸다.

    이사 짐싸기

    이사하는 날

    침대, 책상, 의자와 같은 가구가 하나도 없어서 IKEA Richmond에 가서 주문했다. 이전에 IKEA에 사전에 다녀와 어떤 가구를 살지 보고 왔었어 구매하려고 하는 목록을 빠르게 픽업할 수 있었다. IKEA도 무서운 게 조금만 질이 좋아져도 가격이 수배로 뛰어버리는 통에 다른 곳에서도 골라서 사고 싶었지만, 배송비가 워낙에 비싸 한 번에 주문할 수 있는 곳에서 다 주문했다. 감사하게 Justin님 댁에서 이사하면 필요할 도구들도 많이 주셔서 자잘한 물건들 사는 걸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가구 구입

    원래는 배달하는 사람을 쓰기로 하다가 시간이 맞질 않아서 IKEA에서 제공하는 배송 서비스를 이용했다. 3시 이전까지 배송을 신청하면 당일에 배송해준다길래 열심히 가구를 구매해서 배송을 신청했고 집에 와서 기다렸다. 그 사이에 보스도 맥주 사서 놀러와 빈 집 구경을 하고 갔다. 이 때까지는 금방 배달 오리라 믿었는데…

    IMG_6799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 배송도 오지 않고 연락도 없었다. IKEA는 택배사에 문의하란 얘기만 반복하고 택배사는 전화를 받지 않아 밤 10시까지 기다리다가 그냥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역시나 아침에 배달 온다고 전화가 왔고 급하게 와 물건을 받았다. 전날 밤에 비가 잠깐 왔는데 그래서 그냥 안 오고 갔단다. 가구 던질까 봐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배달!

    교회 형이 도와주러 와서 같이 침대를 조립했더니 3시간이 지나 저녁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같이 저녁 먹고 보내고서 혼자 열심히 성인용 LEGO인 IKEA 가구를 조립하다 잤고 다음 날 나머지 조립하고 청소하고 쓰러졌다.

    신청해야 할 것들

    우편물 주소 변경 서비스 신청

    호주 우체국에서는 이사했을 때 기존 주소로 오는 우편물을 새 주소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달에 23.05달러, 3달에 39.55달러이므로 상황에 맞게 신청하면 된다. 새 주소가 수취 가능한 주소인지 확인 메일이 발송되고 그 메일에 서명해 우체국으로 보내면 그때부터 변경된 주소로 보내준다.

    실제 거주하는지 확인하는 Mail Redirection 서비스

    전기/도시가스 신청

    전기와 도시가스는 Origin Energy로 신청했고 별문제 없이 연결된…줄 알았지만, 하루 단전을 겪었다. 인터넷을 통해 전기와 가스를 쉽게 신청할 수 있길래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전기가 끊겨 깜깜한 집에서 2시간가량 전화 붙들고 겨우야 연결할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신청한 신청서는 전산에도 잡히지 않아서 CS 담당자도 의아해했는데 어찌 되었든 전기 연결에 성공했다.

    단전 >_<

    전기와 가스 연결 시에 여러 가지 물어본다. 개를 키우는지,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는지, 집에 생명 유지장치 같은 게 필요한지 등 질문한 후 약관에 동의하면 원격에서 예정된 날짜에 전기와 가스를 연결해준다. 이 연결이 원격으로 가능하면 연결 비용이 5달러가량 청구되고 원격으로 안되면 100달러 이상이 든다고 한다.

    연결 신청을 한 후에도 이전 공급자에게서 자꾸 경고 편지가 왔다. 앞서 전기도 한번 단전된 경험이 있어서 전화해서 연결 상황을 여러 번 확인해야만 했다. 가격에 따라 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좋긴 하지만 공급자끼리 정보가 잘 공유되지 않아 단전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건 소비자라는 게 씁쓸하다.

    아직 전기와 가스 비용이 나와보지 않아서 얼마나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전기는 3달에 한 번씩, 가스는 2달에 한 번씩 고지서가 발송된다고 한다.

    인터넷 신청

    호주는 일부 지역엔 NBN이 들어와 빠른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 동네에는 아직 ADSL밖에 옵션이 없었다. 인터넷은 Engin으로 연결했는데 ADSL이라서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전화를 가설해야 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을 전화까지 설치하게 되었다. (합해서 월 70달러)

    가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뎀이 도착해 설치했다. 연결했는데 신호가 안 잡혀 CS에 상담을 했다. 전화기로 먼저 라인을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전화기를 구매해야만 했고 연결을 해보니 역시 되질 않아 기술 지원팀이 집을 방문했다. 라인을 점검해서 건물까지는 라인이 살아있는데 건물 단자함에서 집 안으로 라인이 들어오질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해줬다. 이 경우에는 프로퍼티 매니저에게 연락해서 조처를 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해서 연락을 했고 또 다른 테크니션과 약속을 잡아 내부 라인을 확인했다.

    연결 확인

    내부 라인을 확인한 결과, 모두가 라인이라고 생각했던 그 선을 따라 반대로 가보니 아무 곳에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주방 장판 밑에 숨겨져 있었다. 즉 집에 전화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그 사실을 확인한 테크니션은 건물 외부로 선을 만들어 집까지 끌어와야 한다고 했고 집주인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줬다. 또다시 프로퍼티 메니저에게 연락했고 테크니션 말대로 하기로 집주인과 합의를 봤다고 연락이 왔다. 또 약속을 잡아 방문한 테크니션은 5시간여 외부 라인 공사 끝에 벽에 구멍을 내 전화선을 연결해줬고 드디어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벽에 구멍내서 포트 연결

    이 모든 과정이 신청에서부터 1달 걸렸다. 인터넷 설치가 가장 오래 걸린다고 빨리 신청하라 해서 신청했었는데 인터넷 없이 한 달 비용을 내게 되었는데 선 끝 모양이 전화선이라고 모두 연결된 전화선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호주의 여유로움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과 같은 말도 안되는 속도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이번 이사로 좀 더 여유로움에 익숙해질 기회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처음으로 혼자 지내게 되었는데 아이들도 있고 시끌시끌한 곳에 있다가 혼자 지내니 어색하기도 하다. 처음 호주에 도착했을 때 그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새로이 각오를 다져 열심히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