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장만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프린터였다. 급한 것은 사무실에서 출력하면 되긴 하지만 집에서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것과는 확실히 기분이 다르니까. 물론 부피가 있어 공간도 필요하고 자칫 먼지 수집기로 전락 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 고민을 오래 했었다. 특히 무거운 프린터를 구입해서 어떻게 집에 들고 올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였다. 고민만 계속 하고 있었는데 지난 휴가에 차를 빌린 동안 이참에 장만하자는 생각이 들어 레이저 프린터를 구입했다.
잉크젯 프린터는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지만(캐논 프린터는 15불부터 시작한다.) 잉크 가격이나 헤더 막힘 등 여러 문제를 겪은 기억이 있어서 구입 목록에서 아예 제외했다. 레이저 프린터 중 69불에 wifi 되는 Brother HL-1210W 프린터가 괜찮아 보여 구입하려 했었는데 실물로 보니 안예뻐서 (프린터는 가전이니까 이뻐야)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던 중 Fuji Xerox가 동급 기능의 브라더 프린터에 비해 저렴하고 특히 토너도 저렴하길래 결국 Fuji Xerox DocuPrint P265DW 로 정하게 됐고 Officeworks 매장에서 98불에 구입했다.
종이를 담을 수 있는 트레이가 있고 wifi 기능도 내장되어 있다. 디스플레이도 한 줄 짜리지만 있어서 간단하게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나 쓸 지 모르지만 양면인쇄도 가능하다. 전원 넣고 wifi를 검색해 비밀번호를 넣으니 바로 AirPrint 네트워크 프린터로 잡혀서 사용할 수 있었다. 프린트를 위해 SCSI 케이블을 찾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고 USB도 필요 없고 wifi로 내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자동으로 프린터로 잡히니 내가 구석기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코드를 꼽아두면 전기를 많이 먹을 것 같아 사용할 때만 전원을 연결했는데 전원 연결하고 wifi까지 자동으로 연결된 후 wifi 버튼에 불이 켜지기 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디지털 기기가 일상화되고 그 위에 좋은 오피스 앱/서비스, 클라우드가 자리 잡은 덕분에 Paperless 환경을 쉽게 구축할 수 있지만 나에겐 아직도 손에 잡히고 펜으로 밑 줄 그을 수 있는 종이가 편하게 느껴진다. 요즘 세대가 저장 버튼에 있는 디스켓 아이콘의 맥락을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어릴 때부터 종이가 아닌 디바이스를 먼저 접한 세대라면 디바이스보다 종이가 편하다는 그 감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아이콘은 무슨 뜻이죠?” 처럼 “왜 종이에 출력한걸 보죠? 그냥 화면으로 보면 되는데.” 라고 반문할 날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도 종이는 오래가지 않을까 얘기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코닥도, 아그파도 무너진 것을 보면 의외로 그 시대가 가까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