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엉킨 실타래처럼 시작과 끝을 모르는 고민을 자꾸 하게 돼서 어떻게든 적어보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모든 일이 꾸역꾸역 해야만 진행이 되는 느낌일까. 미루기 전문가라서 그런 것이 분명하다.

회사를 다닌 지 한 달 반 정도 지났다. 원래 들어가기로 했던 프로젝트는 여러 이유로 미뤄졌다. 그래서 늘 하던 종류의 업무를 몇 받게 되었는데 이전 회사에서도 오래 해왔던 업무라서 큰 부담이 없었다. 익숙한 패턴으로 진행되는 자잘한 업무에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동안 일을 쉰 기간도 있으니 적응에 시간이 걸릴까 걱정한 것도 무색해졌다. 비지니스에서 필요로 하는 크고 작은 일을 꼼꼼하게 보고 서둘러 처리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의 범위는 넓지만 자세히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그런 일들.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한 일감을 큰 고민 없이 척척 해냈다. 이런 작업이라면 학교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자신감까지 챙겼다. 그러던 중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날이 왔다. 몇 주 간 익숙한 업무 사이에서 쌓아온 자신감은 일주일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처음 맡은 일감은 겉은 쉬워 보이면서도 프로젝트를 속속 알아야만 할 만한 그런 일이었다. 어떤 일이든 배워서 하면 되는 거야, 난 늘 그런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약간 나를 태워가면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일에 나를 온전히 던지는 나는 과거의 나였다. 지금의 나는 또 다르더라.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이게 맞는 걸까, 여기에 시간을 쓰고 일을 배우는 것이 합당한가 따지는 이상주의자와, 학비를 어떻게든 마련해야 하니까 이건 와신상담의 자세로 맞서야 한다 생각하는 현실주의자의 싸움이었다.

물론 현실주의자의 승리다. 당장은.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이런 여유 없음 당연한 것이다. 회사 다니기 시작하면 첫 세 달은 적응에 정신 없기 마련이다. 일 안하는 기간 동안 그냥 지낸 것도 아니고 자잘한 토이 프로젝트도 하고 학교도 부지런히 다녀서 좋은 성적 냈는데. 왜 자꾸 자신 없는 나라는 틀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모르면서 막연한 상상에만 집착하니까 겉으로만 도는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해도 막연하기만 하니까 시작할 것도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고민의 쳇바퀴에서 습관처럼 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이 없으면 고민만 늘어난다. 그러니까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라도. 요즘 하는, 많은 고민들의 답이 거기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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