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만나게 된 동생이 있다. 교회를 통해 만난,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 온 동생인데 한참 일하다가 2주 전에 마지막 여행을 다녀와서 오늘 한국 들어간다고 어제 만나 점심을 같이 먹었다. 이렇게 이별의 순간을 맞이 할 때마다 언젠가는 또 만나겠지 어디선가 마주칠 일이 분명 있겠지 하고 마음을 추스리는 편이었는데 이번만큼은 그게 잘 안되더라. 타지 생활 하면서 마음도 많이 여려졌나 싶었다.

매년 호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통해 영어 돈 여행 세가지 목표를 가지고 많은 청년들이 온다. 대부분 그 청년들은 호주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일들을 세가지 목표를 생각하며 꿋꿋하게 참는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어떤 비자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카스트 제도와 같은 계급을 형성한다는 얘기가 그닥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까닭은 실제로 임금도 제대로 못받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그 좋은 젊음을 여기에 모두 쏟아놓고 가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슬픈 얘기는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 대다수가 스펙 쌓기의 연장선으로 호주에 오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펙도 결국 투자 대비 결과물이라는 양적 측면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계층의 고착과 재생산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사회는 스펙이란 것을 요구하지만 스펙의 실체는 사실 계층 고착의 단면일 뿐이다. 결국 그 유리 천장을 넘어가기 위해 어학연수든 뭐든 필요한데 전 세대의 지원을 받기 힘든 젊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워킹홀리데이만큼 매력적인 캐치 프레이즈가 없다. “호주의 아름다운 대자연에서 돈도 벌고 영어공부도 하세요.”

한국의 청년들이 호주에 와서 배웠으면 하는 것은 그런 스펙 경쟁보다 온전한 꿈과 일생의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것이었으면 한다. 이제야 20대의 중반을 넘어가는 수준이라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도 어려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먼 남국의 땅에 와야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잘못된 문화가 낳은 한국의 현실이 슬프다.

Sydney Ticket

2012년 2월, 갑작스레 결정하고 멜번행 티켓을 발권, 한달 후에 호주 땅을 밟았다. 뭔가 쿨해 보이지만 나 또한 파랑이라 불리는 해커스 토익책 앞 열 페이지를 넘겨보지 못한 사람이었고 어떻게 아프리카나 남미행 비행기가 아닌 호주행을 제대로 타고 왔는지 신기한 수준이다. 영어 실력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개발팀장의 경력과 고민할 것 없이 하면 된다는 긍정적 추진력을 가졌던 대표가 준 영감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아직 젊다는 생각이 나를 떠나게 했다. 호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젊음이 가장 큰 밑천이라고 내내 생각하면서 내가 이 광야의 과정을 극복함으로 얻을 일들과 관계를 기대했다.

오기 전에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던 것이 인터넷 검색이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 와서 개발자로 일을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영어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준비하고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틈에 CI포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서 개발일을 하는 분의 얘기를 짧게나마 들을 수 있었고 그에 힘을 얻기도 했다.

오자마자 예약했던 백팩커에 짐을 풀었고 계좌도 만들고 휴대폰도 등록했다. 모두 한국에서 준비해온 부분이라 영어 한마디 없이 준비할 수 있었고 둘째날부터 백팩커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이력서를 보냈다. 감사하게도 하루에 한두번씩은 연락이 계속 왔는데 준비를 하질 않았으니 당연히 들릴 턱이 없었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빅토리아 마켓에 구경가려고 시티순환 트램을 탔었는데 그때 헤드헌터한테 전화가 왔었다. 다짜고짜 첫 질문을 던지던데 뭐라는지 몰라서 Sorry? 이랬는데 똑같은 질문을 몇번이고 하길래 잘 들어봤더니 무슨 account situation 을 물어보더라. 뭐 여튼 여차저차 넘어갔고 당연히 나중에 연락 준다고 하고 연락 안줬다. 그때 녹음한걸 들어보니 질문은 What is your current situation? 이었다.

초기에 묵었던 그린하우스 백팩커. 방 쓰던 사람들이 다 장기체류라서 보안 걱정(?)이 좀 덜했다.

하루에도 한 두통씩 전화가 오니 인터뷰에 무얼 물어보는지 명확하진 않더라도 단어로라도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2주 일하는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급하게 사람이 필요한 곳이어서 내가 영어가 상당히 모자라다는 것도 알면서 채용을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곳에서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즐거웠다. 여기서의 일이 나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되었다.

호주에서의 취업은 레퍼런스를 요구하는데 구직자에 대한 보증을 전 직장의 상사에게 구한다. 한국에서는 생각해보기 힘들지만 호주에서는 직업관이 한국과 달리 상당히 유연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전에 다니던 직장에 전화해서 얘 일할 때 어땠어? 이런 질문을 한다고. 답변도 그에 따라 공정하고 쿨하게 해주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레퍼런스가 없으면 호주에서의 취업은 거의 어려워서 레퍼런스 때문에 무급 인턴을 하기도 한단다.

기상의 규모가 확실히 다른 편. 여름의 하늘도 한국의 가을만큼 높다.

그리고나서 또 다시 이력서를 열심히 보내면서 자리를 찾으려고 애썼는데 영어가 안되는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이거 무슨 일인지 아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는데, 일만 시켜주면 잘 할 자신이 있는데 이걸 영어로 어필하기는 커녕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매 인터뷰마다 짧은 영어도 경청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게 지금의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긍정적이었던 부분은 인터뷰가 떨어질 때마다 좌절감을 맛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계속 문을 두드렸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만 하는 상황을 계속적으로 마주하게 됨으로 짧은 영어라도 어떻게 구사해보려고 계속 노력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인터뷰들이 마지막 인터뷰를 위한 준비과정이라 생각하며 지속적으로 도전했다.

회사 앞 공원 풍경. 회사 앞인데도 한번 밖에 못가봤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경력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삼성과 같은 회사에서의 경력이라면야 당연히 인정해 주겠지만 앞서 말했듯 레퍼런스 체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거의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글이 훨씬 많았다. 내가 마주한 상황에서는 한국에서 어떤 일을 담당하고 어떻게 진행했는지 어필이 잘 안되서 그랬다 뿐이지 경력 자체를 부정하거나 하진 않더라. 뭐, 결국에 중요한 것은 영어다.

아쉬웠던 점은 역시 영어를 미리 준비해오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하다못해 동네 회화학원이라도 다니다 왔으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오자마자 묵었던 백팩커에서 받은 카드키가 되질 않아서 바꿔달라고 말하려고 얼마나 땀을 흘렸던가. 인터뷰마다 물어보는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참 많았다.

또 다른 언어에 대한 경험이 적었던 것이 아쉬웠다. 한국에서는 자바나 php에 대해 많이 편중되어 있는데 이곳은 닷넷이나 파이썬, 펄 등 다양한 개발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다른 개발 언어에 대한 경험이 있었더라면 좀 더 이전과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일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또한 php라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모델1 방식을 많이 사용하는 반면 모델2로 이야기 되는 mvc 방식을 많이 사용하며 프레임워크도 상당히 많이 쓰이는 편이다. 줌라나 드루팔, 워드프레스 각각의 cms도 많이 쓰이는 편인데 각 cms도 나름의 객체지향적으로 구조가 짜여져 있어 동일한 php 임에도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코딩 스타일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내 경우에는 codeigniter 한국포럼에서 나름 부지런히 활동하고 했던 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개발을 한다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기 때문에, 또한 분야의 특성상 해외에서 일해보는 것을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되는데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무조건 도전하라는 말보다는 무엇을 할 지 리서치도 해보고 자료도 정리하며 회화학원도 다녀서 준비하는 시간까지도 아깝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해에는 열정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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