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님 댁에 살 때는 엄청나게 큼지막한 커피 머신이 있어서 커피 생각이 나면 내려서 먹을 수 있었지만 이사 온 이후로는 커피를 집에서 마실 일이 없었다. 그 핑계에 카페인 섭취량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매일 회사서 사 마시다 보니 차라리 집에 장비를 꾸려두고 적당히 조절하는 게 어떨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래서 두 달 전 프렌치프레스(French press)를 구입했다. 뒷정리가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마시고 정신 차리는 게 하루를 밀도 있게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란 사실을 알고서 계속 마시고 있다. 카페인 걱정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프렌치프레스를 구입하기 전에도 모카팟(Moka Pot)을 구입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프렌치 프레스로 구입했었다. 근데 여자친구가 2주년 선물로 모카팟을 선물해줘서 결국 둘 다 갖게 되었다. (선물 고마워요! ?)
프렌치프레스는 필터 안 갈아도 되는 드립 커피 느낌이지만 모카팟은 일단 에스프레소 추출기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압력밥솥과 같은 원리로 추출하는데 시각적으로도 신기하고 독특하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면 모카팟 하나 장만해 커피 내려 마시는(원리로는 올려 마시는?) 재미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모카팟은 원래 Bialetti에서 모카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제품이 원조인데 이 제품의 원리를 사용한 모든 제품군을 모카팟으로 부르는 것 같다. 내가 선물 받은 팟도 이 원조 제품인데 1933년에 출시했더라. 역시 좋은 제품은 오랫동안 간다.
먼저 커피콩을 준비해서 블랜더에 갈아준다. 동네 카페에서 구입한 콩인데 처음엔 너무 시큼하단 생각을 했는데 먹다보니 적응 되었다.
적당한 양을 넣고 갈아준다. 너무 살짝 거칠게 갈아야 한다고 모카팟 설명서에 써져 있어서 적당히 간다. 너무 곱게 갈면 압력이 너무 강해져 위험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모카팟은 곤충처럼 세 부분으로 나뉜다. 밑에 물을 넣으면 깔대기를 통과해 윗 공간에 커피가 모이는 방식이다. 단순하면서도 만듬새 있어서 평생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단 공간에 물을 먼저 넣어준다. 물을 넣을 때 안에 압력을 조절하는 구멍 같은게 있는데 그 구멍을 막지 않는 선까지 물을 넣어준다. 압력밥솥에서 일정 압력을 유지해주기 위해 달려있는 뚜껑 꼬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깔대기를 놓고 앞서 갈았던 커피를 적당하게 넣어준다. 내 모카팟은 6컵을 한 번에 만들 수 있는데 4컵 정도 만들 분량만 넣는다. 한 잔 따라서 마시고 나머지는 보틀에 넣어 사무실에 갖고 가서 물타서 마시고 있다. 이렇게 커피 덕질을 시작하는 느낌.
커피를 다 넣었으면 나머지를 잘 조립해준다. 꽉 닫아야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상단부가 날아갈 일 없고 압력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가스렌지에 올리고 불을 켠다. 중불로 하라고 하는데 약한 쪽에 올려서 최대로 트는게 더 간편해서 그러고 있다.
적당한 때가 되면 치치 소리가 나면서 커피가 나온다고 한다. 나는 소리가 안나서 (아니면 그렇게 귀가 민감하지 않아서) 그냥 보고 있다가 한 60% 정도 커피가 올라오면 불을 끈다. 압력이 강하기 때문에 열어보다가 커피가 뿜어져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불을 끄고 따라서 마시면 된다.
같은 콩이라도 프렌치프레스에 내려서 마시는 것과 에스프레소로 마시는 것은 생각보다 맛이 많이 달랐다. 믹스 타서 마시는 것에 비하면 과정도 길고 복잡한 기분이 들지만 이렇게 직접 해보니 또 새롭다. 일상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점을 찾는다는 점은 즐거운 일이다. 오랜만에 직접 글을 써서 그런지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하나 막막하다. 여러분 커피 많이 드세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