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분 인생을 이분보다 더 사랑하긴 하는 거예요? [...] 때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항상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데 결국엔 이 감정을 어떻게 잘 다독여서 더 보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남은 해에는 글로 정리하는 습관을 다시 쌓아보는 것으로.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역시나 시간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 @write_bus)

가능한 한 자주 글을 써라. 그게 출판될 거라는 생각으로가 아니라, 악기 연주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Write as often as possible, not with the idea at once of getting into print, but as if you were learning an instrument.

-- J.B. priestley

자꾸 엉킨 실타래처럼 시작과 끝을 모르는 고민을 자꾸 하게 돼서 어떻게든 적어보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모든 일이 꾸역꾸역 해야만 진행이 되는 느낌일까. 미루기 전문가라서 그런 것이 분명하다.

회사를 다닌 지 한 달 반 정도 지났다. 원래 들어가기로 했던 프로젝트는 여러 이유로 미뤄졌다. 그래서 늘 하던 종류의 업무를 몇 받게 되었는데 이전 회사에서도 오래 해왔던 업무라서 큰 부담이 없었다. 익숙한 패턴으로 진행되는 자잘한 업무에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동안 일을 쉰 기간도 있으니 적응에 시간이 걸릴까 걱정한 것도 무색해졌다. 비지니스에서 필요로 하는 크고 작은 일을 꼼꼼하게 보고 서둘러 처리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의 범위는 넓지만 자세히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그런 일들.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한 일감을 큰 고민 없이 척척 해냈다. 이런 작업이라면 학교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자신감까지 챙겼다. 그러던 중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날이 왔다. 몇 주 간 익숙한 업무 사이에서 쌓아온 자신감은 일주일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처음 맡은 일감은 겉은 쉬워 보이면서도 프로젝트를 속속 알아야만 할 만한 그런 일이었다. 어떤 일이든 배워서 하면 되는 거야, 난 늘 그런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약간 나를 태워가면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일에 나를 온전히 던지는 나는 과거의 나였다. 지금의 나는 또 다르더라.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이게 맞는 걸까, 여기에 시간을 쓰고 일을 배우는 것이 합당한가 따지는 이상주의자와, 학비를 어떻게든 마련해야 하니까 이건 와신상담의 자세로 맞서야 한다 생각하는 현실주의자의 싸움이었다.

물론 현실주의자의 승리다. 당장은.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이런 여유 없음 당연한 것이다. 회사 다니기 시작하면 첫 세 달은 적응에 정신 없기 마련이다. 일 안하는 기간 동안 그냥 지낸 것도 아니고 자잘한 토이 프로젝트도 하고 학교도 부지런히 다녀서 좋은 성적 냈는데. 왜 자꾸 자신 없는 나라는 틀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모르면서 막연한 상상에만 집착하니까 겉으로만 도는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해도 막연하기만 하니까 시작할 것도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고민의 쳇바퀴에서 습관처럼 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이 없으면 고민만 늘어난다. 그러니까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라도. 요즘 하는, 많은 고민들의 답이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 사이 여러 일이 있었다.

텍사스를 다녀왔다. 조카 E가 많이 컸다. 한국어로 단어도 곧잘 말하는 것이 너무 귀엽다. 고집도 많이 늘었다. 작은 풀을 사서 뒷마당서 실컷 물놀이를 했다. 찌는 듯 더운 날씨였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이제 처제네도 월말에 댈러스로 이사가게 되고 우리도 샌디애고로 갈 예정이라 이런 저런 할 얘기가 많았다. 생각치 못한 일이 있어서 조금은 복잡하게 되었지만 모든 것 다 잘 인도해주시라고 기도하는 일만 남았다.

일을 시작했다. 중부에 있는 회사여서 대부분 중부 시간대로 근무한다. 나는 서부 기준으로 일해도 된다고는 하는데 리모트 근무니까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면 오히려 여유가 생기니까 이른 시간부터 근무하겠다고 그랬다. 지금까지 일해본 회사와는 또 사뭇 다른 문화라서. 주변에 어떻게 일하는지 분위기는 어떤지 읽고 내 속도를 맞춰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리모트라서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잘 적응해서 좋은 결과 만들고 싶다.

일을 오랜만에 해서 걱정이 많았다. 뒷마당 정리한 이후로 손이 부실해졌다. 줬다 피는 동작이 잘 안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나마 타이핑 할 때는 괜찮다. 재활 운동을 계속 해야하는데 그냥 운동이랑 다르게 지루해서, 이렇게 생각하면 더 안하겠네. 열심히 하자.

회사서 보내준 랩탑에 개발 환경도 부지런히 구축했다. 오랜만에 뭔가 설치하는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코딩도 걱정이다. 그 사이 뭔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일을 쉰 것이 몇 년인데 다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이 날까. 내 경력이 헛경력 안될려면 좋은 결과 만들어야 할텐데. 그러면서도 막상 프로젝트를 시작하니까 걱정과 다르게 손이 움직였다. 돈 받고 한 일은 잘 안까먹는다는 얘기도 생각나고. 그렇게 첫 주 보냈다.

내 우선 순위는 학교니까 만약 일이랑 학교 중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학교를 선택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일 중독인지 일이 너무 좋다. 할 일을 적어두고 혼자 몰두하거나 동료와 함께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다. 학교 시작하면 둘 다 병행할 예정이라서 벌써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도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염려스러운데. 체력도 만들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늘 할 일이 많다.

책 읽는 것 기록하고 싶어서 작게 트래킹 페이지를 만들었다. 짧게 읽은 부분 기록하고 읽은 것 정리도 하고. 작은 목표로 잦은 작은 성공을 만들자, 스몰빅에서 얻은 팁이다.

여기 부스러기도 자주 생각도 정리하고 글쓰려고 만든 공간인데 자주 써야지 마음 먹으니까 더 쉽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별로 편한 마음가짐 아닌 것 같은데. 이율배반의 삶을 살고 있다.

잘하자, 잘 살자.

동네서 파티 하는지 마리아치가 요란하게 들린다. 벌써 5월도 끝으로 향한다.

한참 기다렸던 편입 결과가 다 나왔다. 숙고 끝에 UC San Diego를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 학교 행사도 다녀오고 학교도 구경하고 왔다. 예전엔 관광하는 기분으로 둘러봤지만 이제 내 학교가 된다니까 다르게 보였다. 도서관도 올라갔는데 조용한 공간에서 각자 할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내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걱정이 쏟아졌다. 학비도, 이사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라서.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말고는. 잘 될 것이다, 그런 믿음이 막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빠르게 행동하는 동기가 된 것 같다.

사실 올해 3월 즈음엔가 예전 일하던 곳에서 원격으로 일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들어서 몇번이고 미팅을 하다가 흐지부지 된 적이 있었다. 그때야 아직 학자금 대출이 얼마나 될 지도 몰랐으니까 학비에 대한 큰 걱정은 없었으니 엎어져도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학교가 정해지고 지출과 융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나서 덜컥 겁이 났다. UC가 퍼블릭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미국 학비는 미국 학비더라. 지난 학교를 다니면서는 부족한 것 론을 받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얼마 간 일을 할 생각으로 미팅을 한 덕분에 차라리 일을 구해서 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빠르게 기울었다. 얼른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준비해서 돌렸고 다행히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는 곳을 찾아 6월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다니던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졸업했다. 코로나 걱정이 앞서서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은 대신에 민경씨가 작은 졸업식을 열어줬다. 결과만 보느라 바빴는데 그 과정에 감사하는 시간이 너무 적진 않았는지. 민경씨에게 항상 고맙다.

벌써 올해도 6월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할 일 적어가면서 시간을 더 아껴 쓸 수 있음 좋겠다.

빨리 잠드는 것 만큼 부러운 일도 없다.

뒷마당 정리가 모두 끝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하게 잘 되어서 다행이다. 예상했던 시간에 맞게 잘 끝난 것도 다행이다. 이제는 뒷마당 한 켠에 작은 텃밭을 다시 꾸리려고 준비하고 있다. 과정을 잘 기록하지 않은 게 아쉽다.

그동안 계속 손을 쓴 탓에 여전히 마디가 아프다. 꾸준히 하면 빨리 낫는다는 작은 손 운동도 계속 하고 있다. 손가락을 구부리는 작은 동작도 아파서 잘 되지 않는다. 잃어야 보이는 것을 또 경험한다. 있을 때 잘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다가오는 금요일에 편입 결과가 거의 다 나온다. 막상 원서와 에세이를 써서 낼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결과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씩 성취감으로 바뀌는 기분이다. 그냥 기다렸다면 정말 힘들었을 기간인데 그나마 뒷마당에서 모든 것 잊고 일정에 맞춰 작업에 열중하다보니 심리적인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다.

지원한 학교 중에 한 곳이 유독 많은 에세이를 요구했다. 다른 프롬프트에는 에세이 쓰기에 급급했는데 간단하게 답변하면 된다는 말에 위로가 됐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늘 고민해도 모호한 기분만 들었는데. 조금은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서. 결과와는 상관 없을지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위안이 되었다. 답은 글쓰기에 있는 것일까!

뒷마당 정리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3주가 되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기록을 남겼어야 했는데 사진이고 영상이고 신경 쓸 틈 없이 매번 날리는 먼지와 갑작스러운 더위와 사투를 벌였다. 생각은 간단했지만 역시나 쉬운 일이 하나 없었다. 그동안 홈디포에서 이것 저것 사다가 땅 엎고 뿌리고 심고 다듬고 다 해본 일이지만 규모가 커지니 노동 강도가 지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나마 다행인건 유튜브에 이런 저런 자료가 많아서 보고 따라만 하면 된다는 점인데 물론 그 사람들이 장비로 한 두 번 파면 끝나는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하니 하루 종일 땅만 보고 있게 된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잠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몸이 고장나버렸기 때문인데 온 몸도 욱신거리고 손가락 마디도 어찌 이렇게 아픈지.

  • 잡초 제거 + 흙 뒤집기
    • tiller와 예초기 사용
  • 새 배관 설치 (french drain)
    • 기존 배관 제거
    • filter fabric 깔기
    • corrugated pipe + catch basin 설치
    • 돌 깔기
    • fabric으로 감싸고 staple 꽂기
  • 잡초 약 뿌리기
  • 땅에 landscape fabric 깔기
  • 돌 깔기

돌은 두 종류를 사용하려고 arizona river rock과 lava rock을 주문했다. 배관에 그냥 crushed rock 써도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river rock처럼 동글동글한 돌 써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적어도 5yd.를 구입해야 배달해주는 탓에 river rock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배관에 쓰고 남은 것은 주변 꾸미는데 사용하기로 했다. 뭐 그 정도는 우리가 나를 수 있지 않나 생각하고 호기롭게 카트도 구입했는데 지금은 이 프로젝트를 과연 마무리 할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더 커져버렸다. 어떻게든 끝내긴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그리고 커뮤니티 컬리지 졸업하게 되었다. 좋은 결과 받고 졸업한 만큼 편입도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바다를 보고 왔다. 맛있는 커피 마시고 책도 읽고 장도 보고. 마스크 안쓰고서 운동하고 산책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우리만 다른 세계서 온 것 같았다. 일상적인 일이 비일상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책방에서도 한참 고민하다 에세이를 집었다.

신입생 어드미션 결과가 나왔다. 지원자와 어드밋 비율을 보면 정말 바늘 구멍이다. 편입 결과는 다음 달에나 나오겠지만 숫자에 놀란 마음은 잘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소요에 휘둘리지 않고 할 일 집중하는 것, 요즘 거기에만 온 정신을 쏟는다. 메타고민까지 가기 전에 고민 열차를 멈추고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스몰 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작은 일과를 꾸준하게 완료하는 것, 목표보다 짧고 반복 가능한 일과를 만들 것, 비교하지 않을 것. 특히 최종 목표와 현재 수준을 비교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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